금강 하구에 전북 군산과 마주한 충남 서천은 백제시대 수운의 중심이었다. 이 지역에서 도자기를 생산한 백제사찰유적이 발견돼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은 8월 11일 국강고고학연구회(소장 차재동)가 2014년 3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충남 서천 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도기 생산유적의 유구(遺構)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특히 도기 생산유적이 백제사찰의 일부였음을 추정했다.
이번 조사에서 유적지 외곽에서는 백제 토기와 기와 가마, 주조유구(鑄造遺構), 통일신라~조선 시대에 이르는 기와ㆍ도기ㆍ자기ㆍ숯가마 등의 유구와 함께 연화문, 수막새 등 사찰 유구가 발견됐다. 또 유적 중심부에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로 연대가 쓰인 ‘운갑사’와 ‘개복사’ 등 명문기와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토대로 “현재 백제 시대 건물지는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지만, 출토유물 등으로 미뤄 사원(寺院) 등의 용도로 활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서천 백제유적지는 백제 멸망 후 초기 건물 기능이 상실됐다가, 통일신라 하대에 기능이 복구됐다. 백제 시대 건물지의 대지와 축선을 활용한 운갑사가 창건됐으며, 고려 시대에는 중창을 통해 개복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백제 시대 유구는 가로 3칸 세로 2칸의 상돈(磉墩) 건물지와 주변을 여러 겹으로 흙을 다진 항축(夯築)유구, 길기 17.75m의 지하굴식 백제 토기 가마 2기, 백제시대 추정 주조유구 등이다. 통일신라 시대 유구는 대부분이 백제시대 유구를 개축한 것으로 배수로와 초석 등과 함께 ‘회창오년 운갑사(會昌五年, 雲岬寺)’ 명문기와와 석조 불상의 불두편이 출토됐다.
고려시대에는 이전 시기의 유구를 깍거나 덮어 새로 조성해 건물 중심 축이 크게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 후기 복토 후 새로운 배치가 이뤄졌다. 고려 후기 유물로는 소조 불상과 ‘개복사(開福寺)’ 명문기와 등이 출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