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따르면 오백 생 동안 손 없는 과보를 받는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淨戒에 따르는 부수 조건이 있습니다.
계는 대략 二戒라 해서 중생의 비구계와 비중생의 보살계(보살계를 재가자의 계율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소위 재가자의 계율이란 삼귀의계와 오계 및 팔계 뿐입니다)로 나누어지는데, 출가의 비구계에는 일체의 善行과 善德이 구족되었다 하여 보통 구족계라고도 달리 부릅니다. 비구계의 篇戒를 정점으로 하여 그 하위에 삼귀의계 • 오계 • 팔계 • 십계로 근기에 따라 계율에도 차등을 두어 분류합니다. 삼귀의계에는 음주에 관한 조항이 없고 오계 • 팔계 • 십계 • 비구계 및 보살계에서는 음주가 遮戒로 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오계 • 팔계 • 십계 등에서는 술 따르는 권주 행위 자체를 직접적으로 제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持律者 자신이 마시지 않고 남에게 따라 주는 소극적인 持戒의 경우는 篇戒로 직접 遮止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죄의 경중을 나누어 제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중생의 보살계에서는 편계와는 달리 계를 적극적으로 지킬 것을 요구하여 자신이 마시지 않더라도 남에게 마시게 하는 행위조차 중죄의 犯戒로 간주합니다. 흔히들 음주 • 권주 • 음행 등등의 행위 자체가 유죄에 해당하는 행위라서 그같은 엄청난 과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음주 권주 등등의 모든 행위들은 중생들이 중생답게 살아가는 모습일 뿐입니다. 음주 • 권주 • 음행 등등이 설령 染法에 해당하는 불청정한 악행일지라도 이는 중생에서 중생으로 이어지는 업장이 강화될 뿐이지 술 좀 따랐다고 오백 생 동안 손 없는 과보를 받지는 않습니다. 중생이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를 살펴 보면 대체로 큰스님이나 부모를 죽이거나 또는 히틀러처럼 인명을 무수히 살상하는 극악행을 저지르는 때라야 간다고 하겠습니다. 오백 생동안 손 없는 과보도 지옥 못지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오백 생동안 손 없는 과보는 언제 받게 되느냐 하면, 중생이 여래에게 귀의 발심하여 보살계를 수지하는 보살이 남에게 술을 따라 준다면 즉각 그같은 과보를 받게 됩니다. 어째서 받게 되느냐 하면, 『Sarvastivada-nikaya-vinaya-matrika-bhasya』에서는 여래의 계율이란 무릇 그 성품이 본래 구원의 길이고 진리의 길이고 자비의 방편이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Vinaya-matrika-bhasya』에서는 이것을 비유로 설명하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의 안위를 돌보듯이 화로에 손대지 말아라 악우를 사귀지 말아라 등등으로 단속하면서 그래야면 네가 행복해진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말씀합니다. 권주하는 행위 자체는 죄가 작더라도 이에 말미암아 자신이 수지하고 있는 진리 그 자체인 여래의 眞實語를 자기가 따른다 하고서 자기가 배반했다 하는 그 자기존재적 근거의 존재이유를 부정했다는 도덕적 상실에서 오백 생 동안 손 없는 과보를 받게 된다 이 말입니다. 결국 모두가 자업자득이라 하겠지요. 부처님께서 因時制義하도록 작지하신 것이 계율이라고들 그래서 임의적인 것이다 라고 잘못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로 계율의 바탕이란 것은 定과 道에 수반하는 지고지선한 신업과 어업을 중생들에게 학습시켜서 중생을 구원하고자 만들어진, 소위 중생이 중생이란 원죄에 매여서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그 현존재적 피구속상황을 부정하기 위한 정언명법적인 도덕율이기도 한 동시에 종교적으로는 중생에게 수적하는 여래의 은총이다 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중생들이 부득이하게 진리의 淨戒를 어겨야 되는 처지에 임하게 되면 捨戒라 해서 계를 여래에게 반환하도록 하여 자유의사이거나 불가항력이건 간에 진리를 배신한다는 중죄를 짓는 불이익한 결과에 빠져들지 않도록 중생들의 숨통을 터주고 있는 점도 불교의 자비가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일반 불자가 멋대로 善律儀 즉 '나는 어떠어떠하게 선량하고 청정하게 살겠다'고 스스로 작심하고는 "나는 이렇게 선행을 쌓았다" 하는 경우는 아무리 중생이 막되먹었다 하더라도 누구나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연한 일인지라 이는 여래의 淨戒에 해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자신의 맹세를 자신이 어기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는 중생의 본색이고 본업일 뿐이기에 여래의 진리를 위배하는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극악한 결과는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여래의 계율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물질(無表色)이라서 身業과 語業 내에 구속되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수계하면서 서약하는 때에 구업의 말소리에 의하여 계율의 존재가 인지되면서(이 때는 表色입니다) 여래의 계율이 전계사를 통하여 수계자에게 전해집니다. 이를 戒體라 하는데 이처럼 계체가 전수되는 순간에 이 사람은 진리 속에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 하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계를 받게 되면 그 계율의 성품에 따라 수계한 사람의 현존재성을 구성하는 人法(pudgala)까지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청정하게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이유에 대해서 세친보살은 깨진 그릇에 어떻게 진리의 물이 담기겠는가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계율은 진리로 들어가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초입의 법문이다 계율에 의지하여야만 중생 딱지를 떼고 해탈한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淨戒 법문에 한 번 들어가면 계율에 따른 유효기간 동안은 捨戒하여 진리행에서 잠시 退轉하거나 또는 破戒하여 진리를 부정하고 구원을 팽개치는 순간까지는 不隨心轉이라 하여 그 사람의 행동과 말 속에서 계속 생기하여 이어지게 됩니다. 진리의 반대는 허망이고 선행의 반대는 악행이고 극락의 반대는 지옥인지라, 혹 담원님께서 나는 꼭 지옥을 한 번쯤 견학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어디든지 수계산림에 찾아가셔서 계를 받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파계하시면 곧장 가실 수 있습니다. 또 아무런 信行도 없으면서 고기 안 먹는다고 나는 불자라거나 거리마다 부질없이 머리 박으면서 나는 불자라거나 남의 말 훔쳐다 자기 책 내고는 나는 불자라거나 한 술 더 떠서 진여의 삼보를 경시하고 재가중생들끼리 그냥 그냥 잘 먹고 잘 살자고 충동질하는 등등으로 이따위 못난 짓거리만 찾아다니면서 잘난 척하는 패악한 자들도 불교인 중에 많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물건들과 불교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불교는 무리하게 중생을 구속하는 종교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중생이 중생소견을 세워서 이것이 법이라고 막나가는 경우까지 허용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누구라고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불교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말하냐 하면, 『아미타경』에 佛國柔軟이란 말씀도 있듯이, 진리에 자신을 조복하지 못하여 여래의 법을 유연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중생이다 참으로 구원 받기 힘든 强剛한 중생이다 비록 만중생이 다 여래의 아들 딸이지만 집안마다 불초자식이 있듯이 이런 자들도 불효자다 선남자가 아닌 악남자다 말세중생이다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래의 진실법이 아무리 진리 중의 진리일지라도 중생이 힘에 부쳐서 따르지를 못한다 하면 다 소용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형편상 중생들이 힘자라는 범위까지만 진리로 끌어주어 점차적으로 누구나 모두가 구원 받도록 만드는 것이 불교의 본질인지라 계율도 이처럼 많아진 것입니다. 삼귀의계, 오계, 십계는 모두 染法에서의 出離만을 요구하는 비구계를 근거로 삼아 파생된, 自利行을 목적한 계율들이라 자신만 잘 지킨다면 그것으로 善哉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계는 利他行만을 목적하는 계율이라서 고기는 물론이고 남에게 권주하는 것까지도 금하는데 그 이유는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無我) 중생을 제도하고자 만들어진 계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범망경』에서 설하는 보살계에서 개시하는 보살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無漏에 섭수되는 利他의 淨行인지라 탐 • 진 • 치에 꽉 매인 머리털 난 중생들이 함부로 받는다거나 행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非衆生 다시 말해서 여래와 중생 사이에 위치한 소위 번뇌를 끊고 聖果를 얻은 聖人이라야만 철저한 이타를 행할 수가 있기 때문에도, 저와 같은 비중생에 해당하는 聲聞의 성인이 '내가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 중생들을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모두 구원하겠다 나는 이제부터 남을 위해서만 살겠다' 고 보리심을 발하여 廻心하는 그런 때에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이 바로 보살계입니다. 따라서 보살계는 다른 계율처럼 갈마법으로 전하고 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인인 사람의 성행이고 성심이고 자비의 근본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요새는 좀 배웠다 싶으면 소나 개나 三寶를 욕하고 헐뜯는 것은 예사이고 아예 되도 않는 보살 장사 좀 해서 이름 좀 날리자고 나서는 말종들도 허다한지라 그같은 행각을 일일이 무어라 평할 수 있으리오만은, 혹간 우리 중생들이 『범망경』에 따라 보살계를 받고서 육바라밀의 보살도를 행하기도 하는 것은 비록 生身의 退轉菩薩에 그칠지라도 無漏의 聖道 속에 구현된 성인의 성행 성심과 무량 자비를 잠깐이라도 흉내내어 내 자신의 선근을 키우겠다는 목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담원 님만이라도 잘 알아두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결론적으로 남에게 술 따른다는 행위에 있어서 술을 따라 준 당사자가 攝他의 보살이라면 이는 오백 생 동안 손이 없는 報를 받을 것이고 출가하신 비구 스님이라면 어리석다는 삼보의 가책에 직면할 것이고 오계나 팔계를 수지하는 재가신도라면 참회를 통하여 청정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고 삼귀의계만 지키는 초심불자라면 이 경우에는 무죄가 됩니다. 또 남에게 술 따른다는 행위에 있어서 선의의 피해자 즉 술 인 줄 모르고 마신 사람이 攝他의 보살이거나 청정비구이거나 오계나 팔계를 수지하는 재가신도인 경우에는 가해자인 술 따른 사람은 계율의 수지 여부와 상관 없이 오백 생 동안 손이 없는 報를 받을 것이고 삼귀의계만 지키는 초심불자라면 이 경우에도 역시 무죄가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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