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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모습이 곧 보살을 말함이니..
글쓴이 : 총무원  (58.♡.173.212) 날짜 : 2009-10-30 (금) 00:00 조회 : 1074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 해도 모든 중생이 내 이름을 듣고 기뻐하며, 내 국토에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염불하여도 태어나지 못한다면 절대로 깨달음을 얻지 않겠다.
-무량수경-

보살이 중생을 섭취(攝取)한다는 것은 재물의 증여[財施]와 법의 증여[法施]로써 중생을 거둔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만이 할 수 있는 희유하고 어려운 행위이다.
-대품반야바라밀경-

보살은 생사를 초월하나 생사에 들어가서 생사를 제도(濟度)하는 존재이다. 지옥까지 들어가서 경계(經戒)를 말하고, 아귀에 들어가서 보시를 말하고, 축생에 들어가서 음일(淫佚)을 말하며, 반드시 선을 짓게 한다.
-제자사부생경-

조선조 제 19대 숙종 때, 호암(護岩)선사가 관세음보살의 시현(示現)을 위하여 벼랑 위 바위에서 백일기도를 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도 관세음을 만나 뵙지 못했다. 호암은 극도로 암담했다. ‘내 신심이 미치지 못하니 죽음만 같이 못하다’라고 한탄하고 거기서 벼랑 아래로 투신하고 말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의 몸을 사뿐히 받아 놓고선, “나를 위하여 몸을 버리는 것은 보리심 이니라”하고는 사라졌다. 그때 호암선사는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임을 알고 그 모습을 조각하여 호암대사는 원통전(圓通殿)을 세우고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보살은 부처님과 중생을 잇는 다리이다. 끝없는 지혜를 구하여 부처님을 오르고자 하지만 고해(苦海)속에 헤매는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우리의 곁에서 제도하시는 분이다.
불교 초기의 정신이 후대에 이르며 점차 쇠퇴하고 자기 한 몸의 깨달음만 구하여 중생의 삶과 유리되어 버린 상좌부(上座部)불교에 대해 소승(小乘)이라 비판하고, 일체 중생을 건네주는 큰배[大乘]가 되겠다고 맹세한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소승의 아라한이 가지는 개인적 차원을 불식한 자기희생 적 노력을 하는 보살이란 이상적 인간상을 내세웠다.
보살은 바로 부처님의 모습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 생(生)에서 무수히 많은 보살행을 하였으므로 부처님이 되었듯 지금의 보살행이 바로 현실 속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형식이다. 보살은 지금 이곳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불교인의 모습이다.
중생의 고통을 외면한 불교는 더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일 수 없다. 보살은 관념적 신앙에 매몰되지 않는 진리의 실천자이다. 중생에 대한 연민에 눈물 흘리며 고통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아파한다.
보살은 어디 있는가? 지금의 어느 누가 보살인가? 보살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되어야만 하는 부처님의 부름이다. 즉 보살이란 뜻을 현재의 일상용어로 표현한다면 ‘대(對) 사회성에 투철하게 입각한 실천인’이라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김상범기자

2009-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