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디의 말이 들어 맞지 않으면 천 마디의 말을 더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기에 중심이 되는 한마디를 삼가서 해야 한다. 중심을 찌르지 못하는 말일진대 차라리 입 밖에 내지 않느니만 못하다.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이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 편안히 간 곳마다 튼튼하다.
옛날에 유생 세 사람이 과거 시험장에 나가려 할 때 한 사람은 거울이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한 사람은 허수아비가 문짝에 걸려 있는 꿈을 꾸었고, 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들은 해몽가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해몽가는 없고 그의 아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서당개 삼년이면 풍월도 한다던데 점쟁이집 아들이야’ 생각하고 그 아들에게 꿈풀이를 의뢰했다.“모두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했다
그러는 동안 해몽하는 주인이 와서 그 아들을 꾸짖고 시를 써 이들의 꿈을 풀어 주었다.“거울이 땅에 떨어지면 어찌 소리가 나지 않으며 허수아비가 걸렸는데 어찌 사람이 올려보지 않으며 꽃이 바람에 떨어졌는데 어찌 열매를 맺지 않으리오” 상서로운 꿈이니 세 분이 모두 소원을 이루고 대성할 것이라 했다.
노자는 ‘지지불언이요, 언자부지로다’즉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하여 말로써는 진실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그래서 ‘도를 도라 함은 이미 도가 아니다’ 하였다.
말은 하나의 표상이다.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온갖 언어를 매개체로 삼아 우리의 뜻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말이 가진 한계를 느끼지 않고 전능의 권위를 부여 하거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지지 않는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온갖 정보의 홍수를 가져왔으나 진실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거짓을 말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다.
불교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는 아름다운 말로써 폭력적인 언어를 정화해야 하며, 진실된 말을 함으로써 부처님의 말씀과 뜻을 닮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구의의 삼밀에 서 구밀이 바로 이 뜻이다. 진실된 말이 가득 찬 세상, 서로 믿을 수 있는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