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율을 가지면 이름을 얻고, 보시를 행하면 큰 재물을 얻는다. 진실하면 덕망이 높아지고, 은혜로우면 착한 벗을 얻는다. -명칭경-
파초는 열매를 맺고 시든다. 대나무나 갈대도 역시 그렇다. 당나귀는 새끼를 배면 죽는다. 사람은 명성을 얻어 타락한다. -율장 소품-
옛날에 어떤 어리석고 겁많은 무사가 살고 있었다. 평화롭던 나라에 갑자기 난리가 터져 국민들은 피난을 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는 무사였기 때문에 군에 뽑히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그에게는 검은 말이 한 마리 있어서 싸움터에서는 늘 검은 말을 타고 싸웠다. 이번에도 그는 검은 말을 타고 전쟁터에 갔으나 적을 보자 갑자기 두려워지고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식은 어찌 될까? 그리고 부모님과도 이별이겠지.’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래도 명색이 무사인 내가 한 번 부딪혀 보지도 않고 물러선대서야…….’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겁은 더욱 났고 무서움은 더해갔다.
‘에라, 모르겠다. 죽느니보다야 사는 것이 낫지.’
그는 곧 죽은 사람의 몸에 묻은 피를 자기의 얼굴에 칠하고 시체들 사이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가 탔던 검은 말은 다른 사람이 빼앗아 타고 가버렸다. 난리가 끝나자 군사들도 모두 떠나갔다. 그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니 전쟁터에서 죽도록 싸웠던 것을 증명할 길이 막연했다. 마침 옆에 흰 말이 네 활개를 하늘로 향하고 쓰러져 죽은 것이 보였다.
“옳지. 이 말의 꼬리를 베어 가지고 가면 되겠군.” 그는 흰 말의 꼬리를 칼로 베어 들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갔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네가 탔던 말은 어찌하고, 이제 빈 몸으로 돌아오는가?”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말 말게, 전쟁터에서 죽었다네. 그래서 그 꼬리나마 베어가지고 오는 중이라네. 가엾게도 내가 사랑하던 말이었는데…….”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이 또 물었다. “아니, 그 꼬리는 흰색이 아닌가? 자네가 탔던 말은 분명 검은 말이었는데?” 그는 할 말이 없었다. 대답할 길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결국 그의 비겁한 행동이 탄로나고 말았던 것이다.
“명예와 거울은 사소한 입김으로도 흐려진다”는 스페인의 속담이 있다. 그런데 명예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결국 이름 석자와 체면에 해당될 뿐이다. 좀더 확대한다면 그가 속한 가문이나 사회 및 국가 등으로도 넓혀갈 수는 있겠지만, 역시 한 개인의 행위에서 비롯해서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평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이란 무엇인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장미꽃을 가리키며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면 저 꽃은 무엇이라 부르든 그 향기는 변할리 없다”고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 수많은 존호(尊號)를 택해서 우리는 정진행을 할 때나 마음에 위안을 얻고자 할 때칭명염불을 하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은 감사야 할 것이다. 성실히 살아가면 그만큼의 명예를 얻을 것이요, 명예를 탐하면 오히려 해가 돌아온다.
김상범 기자
200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