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의 초목을 가지고 창을 만들어 큰 바다 속 모든 고기를 꿰려 하나 모든 고기들이 갖가지 종류여서 꿸수 없듯이,중생 세계도 셀 수 없느니라.
-잡아함 중생계경-
주인으로서 욕됨을 참고, 가난하여도 주고자 하며, 어려움을 만나도 법을 행하고,부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재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러한 네 가지 법이야말로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잡아함경-
어느 때 한 마리의 여우가 포도원 옆에서 어떻게 하든지 거기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가 있어서 기어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우는 사흘 동안 단식하며 몸을 가늘게 만들어서, 간신히 울타리 틈으로 기어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포도원에 들어 간 여우는 포도를 실컷 먹고나서 포도원을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이제는 배가 불러 울타리의 구멍을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삼일간 단식하여 몸을 가늘게 만들어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이때 여우가 말하기를, “결국 뱃속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똑같구나!”고 탄식하였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빈손으로 태어나고,죽을 때에도 역시 빈손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업보(業報)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업이란 단순히 운명에 순응한다든지 팔자소관이라든지 하는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이는 전혀 잘못된 견해이다.
숙명론이 인생의 행, 불행을 좌우한다면 우리에겐 희망도 없을 것이요, 종교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불교에서의 업이란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짓는 행위’를 뜻한다. 과거의 업보도 현재의 행위와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위 개운(開運)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인생이 짓는바 행위[업]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행위는 금생의 나를 만들었지만 나의 행위에 따라 미래는 결정되는 것(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생은 적극적·능동적인 선업을 쌓아가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생에 네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사람으로 나기 어렵고,남자로 나기 어려우며,불법(佛法)을 만나기 어렵고,깨달음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토록 귀한 일중에서 우리는 이미 두세 가지는 성취했다. 그러나 궁극의 깨달음에는 우리 모두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목표를 ‘나는 깨닫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적극적 의미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에 두어야 하겠다. 현재가 윤회의 결과라면 이생에서 기필코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겠다는 의지이다.
인생은 결코 나 혼자만의 고립된 영역이 아니다. 나는 무수한 중생의 노고와 희생에 힘입어 나의 생존을 영위해 간다.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연기(緣起)속에서 나의 생이 이루어짐을 자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삶이 필요하다.
김상범기자
2009-11-04